osason

커크 단상

스팍이 부를 때 마다 목줄에 매인 개 처럼 반응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무렵엔 오년 탐사가 반 정도 지나있었다. 그와 본즈의 대립이 엔터프라이즈의 타일이나 계기판의 파란 불 같은 부속품처럼 느껴지던 시점도 딱 그쯤이었다. 둘은 노부부처럼 싸웠고 멍청한 개들처럼 금방 잊기를 반복했는데, 재미있는 화학반응이었다. 후에 책을 집필할 기회가 있다면 엔터프라이즈호의 관계들이 적합할 것이다. 공간 자체가 박제된 것 같이 시간이 흐르지 않는 관계들의 역학이 서커스 프릭쇼같이 진열되어있었고 나는 유리병을 다루는 기분으로 그것들을 톡톡 두들기거나 아예 깨부수거나 했다.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개념은 탐사에 탐사를 더하며 늘 진부해졌다. 바로 그로 인해 일회성인 만남들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목메는 일 없이, 그렇군요 혹은 이해합니다로 정리되는 외계의 기억들 때문에라도 더더욱 함선 내의 관계에 집착하게 된 거라면 이 오년 탐사는 그 자체로 사람을 외롭게 하고 자라게 하는 압력이고 학습일 것이다.

거대한 무덤이라는 표현이군요. 흥미롭습니다. (너는 뭐가 그렇게 늘 흥미로운 것 투성인지 모르겠어.) 스팍의 눈썹이 치켜올라가는 것은 내 의견에 대한 일종의 코멘터리였다. 백프로 동의하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시는군요 그것은 경탄할 만한 일입니다 하는 문장의 일축이다. 본즈는 콧방귀를 뀌며 그래, 우주가 거대한 무덤이지. 나는 죽어서도 이 무덤을 벗어날 수 없겠군 하고 한탄했다. 그 한탄은 레너드 맥코이를 전반적으로 정의하는 한 문장이었다. 그렇게 파악이 쉬운 것이 모두에게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짐 커크라서 그런건지는 내가 짐 커크가 아니게 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모를 문제다.

사실 이것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어느 일상의 기억이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하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직하게 우주라고 해야할지 모를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어서 기억에 더 매달렸다. 분명히 더 좋은, 본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이 선물한 순간들"을 기억할 수도 있었으면서도 정작 마지막에 떠오르는 건 이런 엔터프라이즈식의 장면들이라니. 그러나 그렇게 엉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팍이 나를 바로 눕히려는지 손을 뻗어왔다. 나는 위를 보던 시선을 약간 틀어 눈에 띄게 흔들리는 본즈의 손에 집중했다. 그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스팍의 감정까지 모두 끌어온 양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두어번 그 손을 다독거렸다. 너희들은 좀처럼 변하질 않는구나. 이 말이 유언이 된다는 사실은 전혀 야속하지 않다. 그저, 다만, 앞으로의 오년 탐사 말이야. 함장 없이도 잘 진행될까... 내가 또 혼잣말을 하는 거라면 이번에도 내 말에 감상을 달아줄 수 있어?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숨 쉬는게 점점 버거워졌다가 어느 순간 스팍의 손 안에서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