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겨울 낚시여행은 베켓 가의 연례 행사였다. 정확하게는, 베켓 가의 남자들을 위한 행사였다. 매년 시즌이 돌아와 식탁에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는 언제나 손사래를 쳤다. 롤리는 군말 없이 곧잘 따라나섰지만 얀시는 아침부터 떠나는 일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출발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침잠을 방해받아 짜증이 엿보이는 미간 주름을 한 가닥 새긴 채 눈을 반쯤 감고 비척비척 차에 올라탔다. 그에 반해 어린 롤리는 눈이 와서 밖을 뛰어다니는 강아지가 된 양 팔짝팔짝 뛰며 낚시 도구가 들어있는 양철 가방을 휘두르며 차고에서 달려나오곤 했다. 마치 두개골을 직접 때리는 듯한 소리에 얀시는 담요를 펼쳐 푹 뒤집어쓴 채 차 안에서 잠을 청했다. 이 풍경은 몇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제 롤리가 그렇게 폴짝거리며 뛰어다니지는 않는다는 것, 얀시가 차 뒷좌석에 몸을 구겨 넣는 것이 전보다 조금 힘들어졌다는 것과 같은 차이점은 있었다. 변함없이 손을 흔들며 마중하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셋은 가족 소유의 헌팅 캐빈으로 출발했다.
그 오두막은 앵커리지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2차선 도로변에는 끝없이 줄을 선 키 큰 나무들이 묵묵히 창 너머로 스쳐 지나갔다. 같은 곳을 맴도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풍경에는 변화가 없었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주유소와 이 지역 주립공원과 마주한 휴양지가 조성된 작은 펜션들도 언뜻 보였다. 보통 이 시즌이 되면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가뜩이나 좁은 도로는 전부 빙판길로 변하는데, 덕분에 이동시간은 다른 계절에 비해 더욱 지체되었다. 평소 어머니의 표현을 빌려, '노친네 운전'으로 느긋하게 두 세시간 동안 약 80여 마일을 달리면 점심을 먹기엔 아직 이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친 나뭇결이 도드라지긴 해도 굳건해 보이는 그 오두막은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게 내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언젠가 얀시와 롤리에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겨울을 지내기엔 조금 추웠고, 가을이 되어 사냥을 하러 오기에 훨씬 더 좋았다. 별장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넓은 늪지대가 나오고 인근에 많은 호수가 있는데 그중 큰 편에 속하는 호수가 그들의 낚시 장소였다. 얼어붙은 그 호수 위에 설 때면 설원과 숲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호수를 빙 둘러싼 숲은 울창하고 깊어 형제는 아버지 없이는 멀리 들어갈 수 없었다. 이전부터 사람들이 다닌 덕에 닦인 길들도 눈이 쌓이면 자취를 감춰 어떤 곳도 길이 아니었으나 어느 곳이든 길이 될 수 있었다. 발 아래 디딜 곳을 한층 더 조심해야 하므로 따라나설 때에는 눈 위에 먼저 새겨진 아버지의 능숙한 발자국을 잘 따라가야 했다. 인적없는 겨울숲은 생각보다 그리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형제가 숲 속을 걸을 때면 부츠 아래에서 나는 뽀득거리는 소리, 바람이 쉬지 않고 휘몰아쳐 윙윙 지나가는 소리, 보이지는 않아도 나뭇가지를 지끈 건드리며 지나가는 네발 짐승들의 발걸음에서 나는 소리,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처진 가지에서 눈덩이가 기어이 후드득 쏟아지는 소리, 겨울에도 가끔 계곡에 울리는 총 소리. 매년 겨울 그곳에 설 때면 항상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었다. 밤이 되면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종종 오두막까지 들렸는데, 형제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롤리는 긴장으로 잠을 설치곤 했었다. 얀시는 비몽사몽간에 그 소리를 들으며 절벽까지 쫓기는 악몽을 꾸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두 형제는 어느새 같은 이불속에 들어가 있기 일쑤였다.
한낮임에도 약간 어슴푸레한 듯 기우뚱한 햇빛 아래에서 호수의 얼음을 파내고 그 자리에 미끼를 건 낚싯대를 드리웠다. 아버지는 몇몇 장소에 똑같이 구멍을 뚫었다. 롤리와 얀시는 아버지가 준비하는 것을 거들고 접이식 의자를 하나씩 꿰차고 앉았다. 얀시는 귀가 시려 털모자를 조금 더 끌어내려 귀를 덮었다. 장갑을 벗었던 롤리의 손끝은 벌겋게 변한 채 낚싯대를 붙잡았다. 점심은 집에서 챙겨온 것들로 든든하게 먹었다. 오늘 그들이 잡는 것들은 저녁 메뉴가 될 것이다.
낮은 짧았다. 그들은 해가 지기 전 구멍을 뚫은 위치에 미리 주워온 기다란 나뭇가지를 세워 이곳에 얼음 구멍이 있음을 표시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루의 낚시가 끝나면 으레 하는 의식 같은 것이어서 형제는 자연스럽게 손발을 맞춰 끝냈다. 잡자마자 빙판에 던져뒀던 물고기들을 양동이에 옮겨 담으니 꽤 묵직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받아들었고 형제는 낚시도구를 나눠 들었다.
이튿날 얀시가 일어난 시각은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그동안 심심했던 롤리는 가져온 게임기를 붙잡고 침대에서 빈둥거렸다. TV가 있긴 했지만 잘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고 채널을 바꿔보아도 그다지 볼 만한 것은 없었다. 아버지는 얀시가 일어나기도 전에 사냥총을 챙겨 나갔다. 인근에 별장을 가진 사람들과 모여 사냥을 갔다가 토끼라도 잡으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돌아오곤 했는데, 사실 아무것도 잡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무슨 빌미든 붙여 술을 마셨다.
오후가 되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해가 지고 저녁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올 테니 아마 그때쯤 되면 꽤 쌓일 것만 같았다. 미리 준비해둔 점심도 둘이서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노곤해질 때쯤 얀시는 코코아를 만들어 롤리에게 건네주었고 롤리는 미리 챙겨온 머쉬멜로우 봉투를 부스럭거리며 뜯고서 얀시에게도 넣어준다며 한 움큼 집어들었다.
해가 떨어진 후에 날씨는 점점 악화됐다. 위협적인 바람 소리가 오두막을 휘어감았다. 창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도 점점 텀이 짧아졌는데, 창틀에도 눈이 제법 쌓여있었다. 겨울에 오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침 아버지에게서 곧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떠들썩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고 얀시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차는 두고 갔지만, 어차피 이런 날씨엔 걸어오든 차로 움직이든 둘 다 불편하니 얀시는 차라리 거기서 묵고 오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어린애 둘만 둘 순 없다며 바람이 조금 잠잠해지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뒤 얀시는 소파에 앉아서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다가도 창밖을 계속해서 내다보았는데 롤리도 게임에 집중이 안됐는지 온종일 손에 쥐고 있던 게임기를 테이블에 이미 내려뒀고 오래된 만화책을 쥐고 페이지만 허투루 넘기다 창문과 창문을 바라보는 제 형을 바라보곤 했다.
켜둔 불이 짧게 깜빡, 하고 다시 켜졌다. 그리고 얀시와 롤리는 별안간 등 뒤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롤리가 먼저 벌떡 일어섰고 얀시는 롤리에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말하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좁은 파티션 벽 너머 부엌 유리창 하나가 깨져서 마룻바닥에 유리조각이 온통 널려 있었다. 창틀에는 나무가 기우뚱하게 쓰러진 채 오두막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높은 벽에 걸린 헌팅 트로피의 뿔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휘감겼다. 얀시는 오한을 느꼈다. 롤리도 부엌으로 와서 입을 벌리곤 나무를 바라보았다. 얀시는 앞문 곁에 세워진 빗자루를 가지고 왔는데 롤리가 굳은 채로 손을 쥐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손을 타고 핏방울이 뚝뚝 흘렀다. 커다란 유리조각을 치우겠다고 건드리다 베인 듯했다. 그걸 바라보는 얀시의 표정이 구겨졌는데 롤리는 아프지도 않은지 혹은 너무 놀란 것인지 표정이 없었다. 얀시는 빗자루를 던지듯 내려놓고 롤리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혼을 내야 했지만 롤리의 표정을 보니 그럴 수가 없어서 어깨를 붙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약을 발라야 하니 소파로 돌아가자며 몸을 돌리는 순간 롤리는 얀시를 한쪽 손으로 힘주어 붙잡았다. 그러자 얀시는 롤리를 바라보다 말없이 동생을 꽈악 끌어안아 주었다. 찬 바람에 롤리의 몸은 얼음장같았다. 그리고 붙어있는 자신의 몸도 그 정도로 차가웠다. 손끝의 온도가 바람과 같아졌다고 느꼈다.
드물게 한 번은 겨울 사냥에서 사슴을 잡은 적이 있었다.
보통은 철새 두 마리, 혹은 토끼라도 잡으면 그날의 사냥은 성공이었는데 그날은 아버지도 이런 기회는 오랜만이었다며 얀시에게 카메라를 쥐여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었다. 무거운 사슴을 바닥에 끌 듯 오두막 부근까지 옮겼고 아버지는 밖에서 사슴을 손질했다. 하얀 바닥에 뿌려진 미적지근한 피에 얕게 깔린 눈이 조금 녹았다. 얀시와 롤리는 그 자리에서 고정된 것처럼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낚시하며 바라보았던 물고기의 눈이나, 토끼의 눈과는 다른 사슴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솔직하게 그것이 무서웠음에도 그랬다. 손질이 끝나고 아버지가 모든 정리를 끝내자 얀시는 오두막 밖에 걸린 털 가죽을 살짝 쓰다듬어보았는데, 그것은 이제 손가락과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겨울이었다.
#Pacific R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