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seorim

Þú ert sólin


허크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해변으로 나가곤 했다. 주로 혼자였지만, 가끔은 맥스와 함께일 때도 있었다. 모래사장을 따라 하염없이 거닐다가 먼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소금기 묻은 바람을 맞으며 방둑에 가만히 서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허크 자신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 확신하지 않았는데, 유예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반복하다 보니 이 산책은 어느덧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는데, 주변에서 보내는 여러 함의의 시선과 그의 앞에서 옴짝달싹하는 사람들의 입술을 피하는 괜찮은 방법이기도 했다는 것은 장점이었다. 썩 나쁘지 않군, 그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쁘지 않아.



허크가 보기에, 롤리는 확실히 예거 파일럿 치고는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보아도 그랬는데, 예를 들어 웨이 쌍둥이의 경우 그들은 예거에 탑승했을 때도, 내렸을 때도 언제나 하나의 물줄기와도 같았다. 그 흐름에 언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말을 꺼내기 전부터 하나의 움직임은 나머지 둘과 같았는데 신경 접속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개개인의 의식이라는 것이 아예 녹아내려 엉겨 붙은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카이다노프스키 부부에 대해서라면, 그들은 손끝으로, 포옹으로, 그 모든 망설임 없는 몸짓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 시종일관 틀어놓는 우크라이나 하드 하우스인지 뭔지 하는 시끄러운 음악(소음에 가깝지만,이라고 허크는 항상 생각했다) 때문에 대화를 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에도 자신이 기억하는 파일럿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지만 대다수가 비슷했다. 인사 파일에 묘사되는 과묵함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렇기에 허크는 롤리가 마코와 짬짬이 나누는 대화나 콘포드에서 텐도와 주고받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항상 그런 그의 행동이 낯설다고 생각했다. 오퍼레이터인 텐도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코와는? 그들은 곧 드리프트에 들어갈 것이고 서로는 상대방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세계에 남는 것은 온전히 둘 뿐인데.



방둑에 앉은 채 맥주병을 든 두 사람의 그림자가 콘크리트 벽을 타고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롤리와 허크였다. 이 자리에서의 대화는 주로 롤리가 이끌었다. 어릴 때의 이야기, 이때까지 카이주와 마주했던 전투 이야기, 마코의 기억 속에서 본 이국적인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롤리는 얀시와의 관계를 후회하곤 한다고 툭 던지듯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자네와 형 사이에."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조금 더...... 음, 그래요,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문제죠."

그는 거기서 하던 말을 멈추고 들고 있던 맥주로 목을 축였다. 허크 또한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목이 마르고 입안이 썼다.

'Raleigh, listen to me-'

얀시는 마지막에 롤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 채로 카이주의 이빨에 짓이겨져 흩어져버린 문장은 줄곧 공기 중에 남아 롤리를 따라다녔다. 얀시가 남긴 소리 조각의 유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앉아있는 두 사람 사이에 있다.

"또다시 후회를 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큰 대가를 주고 배웠으니까. 그래서 마코와는...... 더 노력하고 싶고."

롤리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허크는 롤리의 표정을 보며 분명하게 알았다. 그 순간 둘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허크와 척은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하려 애썼지만 그들 사이의 문제가 어떠했든 몇년 간을 예거 안에서 함께 구른 드리프트 파트너였다. 척이 처음으로 예거에 올랐던 그 순간부터 연결된 채 함께였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든 바라지 않든 상관없는 문제였다. 일반적인 드리프트 파트너로선 혈연관계가 분명히 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두 사람에 있어선 동량의, 혹은 그 이상의 리스크를 껴안는 것이기도 했다. 어느 날 스태커는 자신의 사무실로 허크와 척을 불러서, 둘의 관계가 언제 어떻게든 우리가 치르는 전쟁에 걸림돌이 된다면 재배치를 해줄 테니 망설일 필요 없이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그 상황이 일어나길 바라지는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허크와 척은 끝까지 파일럿을 교체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허크는 순간 시야에서 스쳐가 앞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또다른 습관이기도 했다. 허크 자신이 인지하지는 못했던 행동이지만 특정 지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또한 그는 이곳에서 줄곧 눈으로 무엇을 찾고 있는지 자각했던 것이다. 아니, 인정했던 것이다.

오후의 해가 수평선에 점점 누워갈 무렵 후디를 걸치고 바닷가를 달려가는 젊은 남자의 뒤를 개가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금세 멀어져 아른거리다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해변에도 어스름이 내렸다. 허크는 주변을 한참 배회하다 발걸음을 돌렸다.



장례식이 치러진 후에도 허크는 척의 무덤에 찾아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생체신호가 끊기는 것을 확인한 것은 자신이었다. 반짝이던 점이 화면에서 사라지던 그 순간 자신의 마음에서도 무언가가 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빛이 떠오르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고 기나긴 밤을, 아마도 끝나지 않을 밤을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지만, 그 자신 내부의 자신은 그저 죽은 듯이 어두운 공간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Pacific Rim